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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 규정 빠져 수사·판결 어려워…법조계도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처벌만능주의 중대재해법]

고의인지 과실인지 가려내기 쉽잖아

업무상 과실 해석땐 과잉 수사·형벌

의무위반, 인과관계 규명도 불명확

기업들, 형사 처벌 불안감만 가중

지난 1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재석 266인, 찬성 164인, 반대 44인, 기권 58인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됐다./연합뉴스




지난해 6월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 지하철역·발전소·물류센터 등 곳곳에서 일어났던 중대재해를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추구하는 ‘중대재해는 기업범죄로서 형사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된 기존 사례는 드물었다. 그만큼 강력한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충분한 법적 논의가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같은 해 7월 27일 법제사법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를 시작으로 고작 6개월 만인 올해 1월 8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업들에 단 1년의 준비 기간만 주고 다음 달 27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본회의 당시 표결 결과는 재적의원 266명에 찬성 164명, 반대 44명, 기권 58명이다. 반대 여론이 만만찮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한변호사협회는 올해 2월 ‘2020년 입법평가보고서’에서 “정치적 입장과 필요성에 의해 성급하게 입법된 것은 아닌지 입법 논의와 과정이 아쉽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1월 개최한 개원 33주년 세미나에서 “중대재해법 제정 영향력은 노동계가 경영계보다 더 셌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 중대재해법이 처벌법적으로 결함이 있다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는 배경이다. 현행 중대재해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법적으로 고의와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과잉 처벌 논란이 뒤따른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중대재해법이 지닌 한계는 관련 시행령, 고용노동부의 해설서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대재해법 논란에서 자주 거론되는 법조계의 핵심 입장은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가 올해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경과와 제정 법률에 대한 비판적 검토’ 논문에 담겨 있다. 이 교수는 중대재해법의 처벌 대상인 ‘경영책임자 등’에 대해 “어떤 지위에 있는 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결과 발생에 전혀 기여한 바 없는 자도 형사처벌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책임 원칙에 심각하게 위반되는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현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석면을 예로 들었다. 그는 “수십년 전에 광범위하게 사용하던 석면이 1급 발암물질로 판정됐다”며 “(석면처럼) 당시에는 위험이 알려지지 않은 물질을 사용한 책임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형사처벌하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고의범인지 과실범인지를 가려내기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 보건 확보 의무(중대재해법 4조)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법에서는 과실에 대한 규정이 없다. 김성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고용노동부와 법무부가 공동으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죄형법정주의를 존중하고 과실의 의무 위반을 대상으로 삼으려는 의도였다면 법문에 분명히 명시해야 했다”며 “4조 위반을 업무상과실을 판단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면 중대재해법 6조는 과잉 형벌이라는 주장에 근거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에 대한 법정형은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하지만 중대재해법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상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훨씬 높다.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는 안전조치 불이행의 결과가 중대재해 발생으로 이어졌다는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달렸다. 하지만 법조계는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안전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중대재해가 발생한 후 처벌하는 중대재해법만의 속성 때문이다. 김용희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산업재해는 대규모 조직의 분업에 의해 책임소재 파악이 어려운 기업범죄의 성격을 지녔다”며 “조직은 부장·과장·팀장 등 직급과 직무별로 의무가 분산돼 위반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책임에 대한 인과관계가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충분한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 과잉 수사와 형사처벌의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수사 결과와 법원 판단이 중대재해법 목적과 다른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김 부장판사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수사기관은 모호한 인과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광범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애매한 사안도 적극적으로 기소할 것”이라며 “법원은 형사법의 기본원칙(애매할 때는 피고인 이익으로)에 따라 소극적으로 해석하고 명확한 인과관계만 유죄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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